이익 선생 묘
성호 이익은 1681년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나 그 이듬해에 안산으로 와 평생을 안산에서 머물렀다. 「성호사설」, 「곽우록」 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실학의 중조로 추앙받고 있다.
-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40호
-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일동 555
- 지정일 : 1976.10.13.
- 시대 : 조선 중기
실학의 대가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숙종 7년(1681) 부친 이하진(李夏鎭)이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 갔을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 이익 선생은 그가 살던 안산군 첨성리(瞻星里 : 안산시 상록구 일동)의 호수 이름을 따서 ‘성호’로 호를 지었다.
이익은 숙종 31년(1705) 과거시험을 보았으나 낙방했다. 이듬해 형 잠(潛)이 당쟁으로 희생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안산 첨성리에 머물며 일생을 학문에 전념하였다.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여 실학의 중조(中祖)가 되었으며 그의 학풍은 그 후 안정복, 이가환, 이중환, 정약용 등에 계승되었다. 이익은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데에만 몰두하여 천문, 지리, 의학, 지방제도, 과거제도, 학제, 병제, 관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비판과 이상 및 사상을 널리 써놓은 「성호사설(星湖僿說)」, 「곽우록(藿憂錄)」 등을 남겼으며 사후 학덕을 높이 평가하여 이조판서에 추서되었다.
묘소는 상록구 일동 구릉에 있는데 묘소의 석물로는 묘비, 상석, 향로석, 망주석이 있다. 봉분의 규모는 600×550×220cm이다. 묘비 전면에는 "星湖先生李公諱瀷之墓 贈貞夫人 高靈申氏左 贈貞夫人 酒川睦氏右"라 새겨져 있다. 두향(頭向)은 북향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묘소 우측 사당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성호문화제에서 매년 숭모제(崇慕祭)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