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
김흥도의 베짜기
먼저 의(衣)생활과 관련된 작품으로는 면화 따기, 실잣기, 베짜기(길쌈), 빨래하기, 바느질하기 등이 작품으로 전해져 온다. 이중 <실잣기>와 <베짜기>는 김홍도의 작품 중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의 <풍속화첩>에 포함되어 있다. <베 짜기>도 유사한 시골 농가의 모습을 보여준다(도). 여기에서는 남자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고, 아이는 할머니의 옷고름을 잡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어린 동생도 할머니 등에 업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는 며느리의 베 짜는 기술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김흥도의 점심
식(食) 생활과 관련된 것으로는 봄 경작, 나문 캐기, 논갈이, 모내기와 새참, 점심, 타작, 주막, 고기잡기, 해물장수, 술장수 할머니, 우물가 등의 소재가 그려졌다. 새참, 혹은 점심이 운반되면 일하던 농부들은 모두 웃통을 벗어제치고 맛있게 보리밥을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우고, 탁주를 시원스레 벌컥벌컥 마실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점심>에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새참을 운반한 아낙네는 농부들이 밥을 먹는 동안 돌아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따라온 검둥이는 자기차례를 기다리며 얌전히 앉아 있다. 오른쪽 위에 앉아 항아리 속을 쳐다보는 떠꺼머리 총각 녀석은 아마도 술잔이 자기 차례까지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 하다.
김흥도의 기와이기
주거(住居) 생활을 그린 것은 비교적 적은 편으로 국립박물관 소장 <풍속화첩>중에 <기와이기>가 있다. 또 앞서 <실잣기>에 보이던 자리 짜는 모습도 주거 생활과 관련이 되며, <주막집>이나 기타 풍속화의 배경으로 농가가 조그마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기와이기>에서는 당시 목수들이 집을 짓는 모습을 단순화시켜 표현하였다. 대패질하기, 추를 드리워 기둥이 수직으로 서 있는가 검사하는 모습, 진흙 덩어리를 줄에 묶어 지붕위로 올려주고, 기와를 한 장씩 던져 올리며 차곡차곡 진흙을 바른 위에 붙여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양반사대부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
김홍도가 양반 사대부들의 풍속을 그린 것으로는 평생도(平生圖), 기로회도(耆老會道), 계회도 (契會圖), 아집도(雅集圖), 유연도(遊宴圖) 등이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생도이다. 평생도란 일생도(一生圖)라고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어떤 개인의 일평생 중 중요한 사건들을 6폭 내지 12폭의 병풍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평생도는 김홍도에 의해 최초로 그려졌는데, 현재 전하는 그의 작품으로는 모두 3점이 있다.
제2폭<혼인식>은 흰말을 탄 신랑 일행이 신부의 집으로 가는 행렬을 그렸다. 개천에는 오리가 헤엄치고 있고, 길가 집들의 대문이나 창문에는 여인들과 아이들이 머리를 내밀고 구경하고 있다.
제4폭<한림겸 수찬시(翰林兼 修撰時)>는 조선시대 벼슬살이 중 초기에 가장 촉망받던 벼슬을 하고 있는 주인공의 늠름하고 전도양양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제6폭<병조판서시 (兵曹判書時)>는 외직(外職)을 마치고 한양에 돌아와 병조판서의 큰 벼슬을 맡아 위세가 당당한 주인공이 밑에 바퀴가 달린 초헌(초軒)을 타고 가는 행렬이다.
제8폭<회혼식 (回婚式)>은 나라의 대소 벼슬을 모두 무사히 마쳤을 뿐만 아니라, 노부부 모두 수명장수(壽命長壽)까지 얻어 결혼 60주년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아들, 며느리, 손자 등 집안 식구들과 친척, 손님들이 운집한 가운데 노부부가 회혼례를 올린다. 대청에서 마당까지 임시로 마루를 깔고 위에는 차일을 쳤다. 단상에는 노부부를 따라 남녀가 각기 나누어 서 있고 단 아래에는 하녀들이 서 있다. 사랑채 마루에는 장죽을 문 점잖은 손님들이 있고 하녀가 음식을 운반하고 있다.
국가나 궁중의 행사를 그린 기록화
국가적 행사를 기록한 것으로 의궤도 이외에 계병(契屛)이 있다. 계병은 어떤 국가적 행사에 참여한 관원들끼리 계를 조직하여 그 행사의 중요 장면을 그린 그림과 그 내용을 설명하는 글을 병풍에 함께 실어 궁중이나 관청에 보관하는 한편, 개인들도 기념으로 나누어 갖게 된다. 이런 계병은 상당수가 남아 있는데, 김홍도가 그린 가장 유명한 것이 흔히 말하는 <수원능행도병풍 (水原陵行圖屛風)>이다.
‘수원능행’이란 정조가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陵)을 참배하러 간 것을 뜻하는데, 정조가 수원에 능행한 것은 여러 차례지만 이 병풍에 그려진 것은 을묘년 원행(園行) 행차이다. 을묘년 원행이란 앞에서 살펴본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내용이 되는 행사로서, 1795년 정조는 회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잔치를 동갑인 돌아가신 부친의 묘소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수원 화성(華城) 에서 거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 병풍의 원래 정식 이름은 <원행을묘정리소계병 (園行乙卯整理所契屛)>으로서, 을묘년 원행을 총괄하던 임시 관청인 정리소에서 만든 계병이라는 뜻이다. 이 계병은 다음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 1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 수원성 행궁의 봉수당에서 열린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장면
- 2 <낙남헌양로연도(落南軒養老宴圖)> : 경축행사의 일환으로 수원 인근의 노인들을 낙남헌에 불러 양로연을 베풀어주는 모습
- 3 <알성도(謁聖圖)> : 수원성의 공자묘를 참배함
- 4 <방방도(放榜圖)> : 경축행사의 일환으로 임시 과거 과거를 열고 합격자를 발표함
- 5 <서장대성조도(西將臺城燥圖)> : 서장대에서 야간군사훈련식을 참관함
- 6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謝圖)> : 득중정에서 임금이 활을 쏘는 장면
- 7 <시흥환어행열도(始興還御行列圖)> : 모든 행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귀환하는 중 시흥 행궁에서 쉬는 모습
- 8 <주교도(舟橋圖)> : 노량진에서 배다리를 건너 한강 북쪽 궁궐로 가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