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물9월
김여물(金汝物)
무릇 충신열사가 나라를 섬김은 국난을 당했을 때
목숨을 바쳐 인(仁)을 이루는 데에 있다[1548 - 1592]
김여물의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외암(畏菴), 시호는 장의(壯毅)로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 훈(壎)의 아들이며, 영의정 류(流)의 부친이다. 1591년 의주목사(義州牧使)로 있을 당시 서인(西人)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 투옥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신립(申砬)과 함께 왕의 특명으로 충주의 방어에 나섰다. 충주 방어에 실패하자 탄금대(彈琴臺) 아래 이르러 적 수십 명을 맨손으로 죽이고 물에 투신하였다. 이듬해 의관을 거두어 안산(安山) 동장리(洞長里)에 장사지내고 정려를 세웠다.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사세충열문(안산시 단원구 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