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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소개

6월

표암 강세황(姜世晃)

문화인물6월

강세황(姜世晃)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서화가로,
시·서·화 삼절로 일컬어졌으며 예원의 총수로 추앙받았다
제자로는 김홍도, 신위등이 있다 [1713 - 1791]

초옥한담도 초옥한담도

강세황의 본관 진주(晋州),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添齋)·표옹(豹翁)·노죽(路竹)·산향재(山響齋)·표암(豹庵), 시호는 헌정(憲靖)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8세 때 시를 짓고, 13~14세 때는 글씨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소년기에 쓴 글씨조차도 병풍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32세 때 가난으로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이주하여 벼슬을 한 60대에 이르기까지 약 30년간의 안산에서 청장년 시절을 모두 보내며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또한 「표암유고(豹菴遺稿)」 「단원기(檀園記)」에 강세황이 쓴 글에는 ‘처음에는 사능(士能: 김홍도의 호)이 어려서 내 문하에 다닐 때 그의 재능을 칭찬하기도 하였고 그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중간에는 관청에 같이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거처하였고 나중에는 함께 예술계에 있으면서 지기다운 느낌을 가졌다’라고 하였다.

그가 활동하던 조선 후기 화단의 성격은 다양한 화법의 전개와 새로운 회화관의 탄생으로 일컬어지며, 그 흐름은 대체로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유행, 풍속화·도석인물화의 풍미, 그리고 서양화법의 수용 등을 들 수 있다. 강세황은 바로 이러한 18세기 문예부흥기로 인식되는 영·정조 시대에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화평(畵評)을 쓰는 방법으로 당시의 여러 회화 조류 전반에 깊이 관여하였다. 시(詩)·서(書)·화(畵)의 삼절로 불렀으며, 식견과 안목이 뛰어난 사대부 화가였다. 이를 통해 당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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