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인물7월
한응인(韓應寅)
충정공 한응인은 조선중기 선조대에 활약했던 문신이다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554 - 1614]
한응인의 본관은 청주,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졸재(白拙齋), 시호는 충정(忠靖)이며,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으로 아버지는 부사직 경남(敬男)이다. 한응인은 선조대에 문신으로 초서(草書)에 뛰어났으며, 명(明)에 4차례 다녀온 선조유교칠신(宣祖儒敎七臣) 중 한 사람이다. 24세에 알성문과 병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육조판서와 우의정을 역임하고, 52세에 1605년에는 부원군에 올랐으며 54세에 우의정에 오른 뒤 다음 해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호하라는 유교를 받았는데, 광해군이 즉위하자 되자 계축옥사(癸丑獄事, 1613)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해 고향으로 유배되는 형을 받고 안산에서 지내다가 이듬해 61세에 돌아가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