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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소개

한응인 묘역

한응인 묘역

한응인은 조선중기 선조대에 활약했던 문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우의정을 역임하고 청평부원군에 봉군되었다.

  •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157호
  •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산18-6
  • 지정일 : 1995.8.7.
  • 시대 : 조선중기

한응인(韓應寅, 1554~1614)은 부사직 경남(敬男)의 아들로 태어나 선조대에 활약 했던 문신이다. 그는 초서에 뛰어났으며, 명(明)에 4차례 다녀온 선조유교칠신(宣祖遺敎七臣) 중 한 사람으로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졸재(白拙齋) 본관은 청주, 시호는 충정(忠靖)이며,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이다. 24세에 알성문과 병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판서와 우의정을 역임하고 52세 때 1605년에는 부원군에 올랐다. 54세에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호하라는 유교를 받았는데, 계축옥사(癸丑獄事, 1613)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 당해 고향인 안산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이듬해 61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신도비는 묘역의 50m 전방에 있다. 신도비는 비신, 우진각 지붕형의 가첨식(加添石)과 기대(基臺)로 구성되어있고, 규모는 비신이 79×23×179cm, 가첨석이 143×95×58cm, 기대가 145×100×59cm이다. 비문은 김류가 찬술하였고 한인급(韓仁及)이 글씨를 썼으며 김광현이 전액(篆額)*을 하여 1642년에 건립되었다. 이 신도비의 양식적 특징은 가첨석의 하단부 건물에 기둥석부와 지붕 사이에 있는 공포(貢包)**의 형상을 조각해 놓음으로써 압박감을 덜어주어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 전액(篆額) : 전서(篆書)체로 쓴 비석, 현판 등을 설치함

** 공포(貢包) : 처마 끝에 무게를 받치기 위해 짜 맞추어 댄 나무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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