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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소개

신점 선생 묘

신점 선생 묘

신점은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예제에 밝았으며 도총관, 동지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사후 선무공신 2등 영의정 평성부원군에 추증되었다.

  •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문화재 제5호
  •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산9-2
  • 지정일 : 1991.11.2.
  • 시대 : 조선 중기

신점(申點, 1530~1601)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성여(聖與), 호는 척재(惕齋), 본관은 평산이다. 명종 19년(1564) 과거에 급제, 문한관을 거쳐 선조 2년(1569) 정언이 된 이후 장령·수찬·사간·교리·부교리·부응교 등을 번갈아 역임, 경연관으로 입시하여 기묘사화 때에 피화된 인물들의 신원에 노력하였다.

선조 11년(1578) 집의가 되어 야인의 침임에 대비하여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건의하였고, 이후 충청도, 경기도 감목관이 되어 안흥량(安興梁)에 세곡(稅穀)을 운반하는 배가 파손되는 일이 빈번하여 항로를 정비하고 주변에 창고를 건설하는 등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명(明)에 파견되어 조선의 사정이 위중함을 호소하여 요동의 병사 3,000명의 파견을 이끌어내었다. 선조 30년(1597) 강릉부사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었으며 순검사,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 선조 37년(1604) 선무공신에 봉해졌고, 영의정 평성부원군에 추증되었다. 그는 예제에 밝아 조선 전기 이래 복상 때 관(冠)에 대한 정해진 제도가 없었는데, 그가 경연에서 백포립(白布笠)을 쓸 것을 건의하여 그 뒤 준용되었다고 한다.

비문은 이재(李縡)가 지었으며 신동훈(申東薰)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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