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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소개

홍처윤 선생 묘 및 묘갈

홍처윤 선생 묘 및 묘갈

홍처윤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예조참의까지 이르렀다. 사후 이조참판을 추증받았다.

  •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문화재 제13호
  •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112-2
  • 지정일 : 1991.11.2.
  • 시대 : 조선 중기

홍처윤(洪處尹, 1607~1663)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지임(之任), 호는 안분재(安分齋), 본관은 남양, 경기도관찰사 명원(命元)의 아들이다. 인조 17년(1639) 알성문과에 급제, 예문관 검열 등을 거쳐 인조 24년(1646) 과거 시험관이 되었으나 과제에 문제가 있어 한때 삭직되었다. 이듬해 복직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효종 원년(1650) 응교로 춘추관편수관으로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 해 영의정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했다. 교리가 되어서는 당쟁의 무해함을 진술하다 삭직되었으나 곧 배천군수로 기용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보덕으로 승진되었다. 이듬해 사노(私奴)를 군대에 편입시키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내용의 소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한편, 효종이 옛 성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뜻을 알고자 「서전(書傳)」에 쓰인 기형(璣衡)*을 만들어 바칠 것을 명하자, 이것을 만들어 올려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로 인해서 직강·수찬이 되었으나 곧 삭직되었다. 효종 5년(1654) 다시 보덕에 임명되어 직강, 교리를 지냈다. 효종 9년(1658) 응교·사간·사인, 이듬 해 수찬·사간·사예·종부시정 등을 지냈다.

효종이 승하하자 사인 겸 빈전도감도청이 되고, 이어 교리 겸 한학교수를 거쳐 통정대부로 승진,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듬 해 형조참의,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현종 4년(1663) 첨지중추부사·예조참의 등을 지냈다.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비문은 민진장(閔鎭長)이 지었고 홍우정(洪禹鼎)이 글씨를 썼으며 홍수주(洪受疇)가 전액(篆額)** 하였다.

* 기형(璣衡) : 천문을 관측하는 기계

** 전액(篆額) : 전서(篆書)체로 쓴 비석, 현판 등을 설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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