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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소개

윤강 선생 묘 및 신도비

윤강 선생 묘 및 신도비

윤강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인조 2년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판서까지 역임하였다.

  •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문화재 제15호
  •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산17-2
  • 지정일 : 1991.11.2.
  • 시대 : 조선 중기

윤강(尹絳, 1597~1667)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자준(子駿), 호는 무곡(無谷), 본관은 파평이며 공조참의 민헌(民獻)의 아들이다. 인조 2년(1624) 문과에 급제, 검열을 거쳐 봉교·정언·교리 등을 지냈고, 인조 20년(1642) 사신으로 청(淸)에 다녀왔다. 이후 통정대부의 품계에 올라 승지·집의·대사헌·도승지·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효종 8년(1657) 청에 다녀왔고,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예조판서로 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가 되어 장례를 주관하였다. 이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使),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현종 5년(1664) 민유중의 탄핵으로 사직한 후 안산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조정에서 그를 다시 불렀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그는 40여 년 인조·효종·현종 연간의 국정에 임하여 80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그의 후손들 역시 정승을 지냈을 정도로 출세하였다. 그는 특히 행서와 초서를 잘 썼다고 한다.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지었고, 아들 윤지완(尹趾完)이 글씨를 썼으며 윤덕준(尹德駿)이 전액(篆額)** 하였다.

* 기로소(耆老所) : 연로한 고위 문신들을 예우하는 관서

** 전액(篆額) : 전서(篆書)체로 쓴 비석, 현판 등을 설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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