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맑음
13 ℃ 미세먼지 ㎍/m³

안산소개

최혼 선생 묘역

최혼 선생 묘역

최혼은 양주최씨의 중시조로 학문과 덕행, 특히 예법에 명성이 높았으며 연산군때 사화를 피해 감자골로 입향하였다.

  •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문화재 제10호
  •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사동 산83-8
  • 지정일 : 1991.11.2.
  • 시대 : 조선 전기

최혼(崔渾, 1494~1542)은 조선 전기 문신이다. 양주최씨의 중시조로 호는 독선당(獨善堂)이다. 그는 통덕랑(정5품)까지 올랐으며 친구인 윤개(尹漑)가 그에 대해 기록한 「독선당기(獨善堂記)」가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최혼의 학문과 재주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벼슬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자제훈육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기록되어있다. 이곳은 혼(渾, 9대)이 연산군 5년(1498) 무오사화를 피해 아버지인 자준(自濬), 할아버지인 담(潭)을 따라 감자골(現 상록구 사동)로 온 이래 이곳에서 별세한 6대 13기(27명)의 무덤과 시조로부터 상계(6대) 7명의 제단이 보존되어 있는 안산시 소재 최대 규모의 묘역이다.

양주최씨의 시조 억(億)은 고려시대 태사로 천거되어 공민왕 2년(1352) 호부상서를 역임한 문경공(文敬公)으로 양주군으로 봉작되었으며, 2대 연(淵)은 판도판서, 3대 숙(淑)은 병조전서, 4대 경운(慶雲)은 공조전서, 5대 항(沆)은 사헌부집의를 지냈고, 6대 정안(井安)은 우정언부사직을 역임했고, 정연(井涓)은 김제군수를 지냈다. 이들 일곱 분은 선영 제단에 비석를 세웠다. 양주최씨인 최정걸(崔挺傑, 1585~1636)은 병자호란 때의 순절공신으로 사후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충장(忠壯)의 시호를 제수받았다.[향토문화재 제8호 최정걸 장군 묘 참고]

이들 7대부터 12대까지의 거의 모두가 이곳 묘역에 봉분이 유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비석, 상석, 망주석 등이 석물도 보전 가치가 매우 크다.

제3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으로 "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담당자 정보

  • 콘텐츠 관리부서 문화예술과 문화재관리팀
  • 전화번호 ☎ 031-481-3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