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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소개

유석 선생 묘 및 신도비

유석 선생 묘 및 신도비

유석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삼사의 요직들을 두루 거쳐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 「개산집」이 전해지고 있다.

  •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문화재 제12호
  •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산5-1
  • 지정일 : 1991.11.2.
  • 시대 : 조선 중기

유석(柳碩, 1595~1655)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덕보(德甫), 호는 개산(皆山), 본관은 진주이다. 사옹원정 시회(詩會)의 아들로서 조부 격(格)은 정언을 지냈고,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인조 3년(1625)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직에 있을 때 선조의 제7자 곧 인조의 삼촌인 인성군(仁城君) 공(珙)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자 무고임을 알고 상소를 올려 그를 구출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한 중신 대부분이 도망가고 이듬해 삼전도에서 항복하니, 당시 사헌부장령으로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을 탄핵하였다. 유석은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그는 변려문(騈儷文)을 잘 써서 소동파(蘇東坡)의 경지에 들어갈 만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 「개산집(皆山集)」이 전해지고 있다. 조경(趙絅)이 짓고 허목(許穆)이 글씨 쓴 신도비에는 그의 강직한 성품이 잘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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