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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소개

김류 선생 묘역

김류 선생 묘역

김류는 조선시대 문신으로 인조반정을 일으켰으며 이조판서,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묘역에는 김류를 비롯하여 아들 김경징, 증손 김노득 묘 등이 있다.

  •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문화재 제29호
  •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와동 산13-3
  • 지정일 : 2016.11.28.
  • 시대 : 조선 중기
김류 선생 묘역 관련 사진

김류(金瑬, 1571~1648)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이다. 1623년 거의대장(擧義大將)에 추대되어 이귀, 신경진, 이괄 등과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이듬해 반정의 공신들 간의 갈등으로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로서 남행하는 인조를 호가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우찬성을 거쳐 인조 2년(1624)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청나라가 아군의 편제된 산성 중심의 방어 체제를 미리 알고 도성을 직접 공격해오자 인조를 강도로 모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의론이 엇갈린 가운데 적이 이미 서울 교외까지 진출하자 인조를 비롯한 군신은 남한산성으로 피하게 되었다. 이듬해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주화파의 뜻을 따라 삼전도에서 맹약을 맺는 데 주도적 구실을 하였다.

인조 22년(1644) 심기원(沈器遠)의 모역을 신속하게 평정한 공으로 다시 영의정이 되어 영국공신(寧國功臣) 1등에 녹훈되고 순천부원군(順天府院君)에 책봉되었다. 청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왕세자의 귀국을 주장하는 한편, 영춘추관사로서 실록의 수정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대사헌 홍무적(洪茂績) 등에 의해 탄핵을 받자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가, 이듬해 다시 영의정으로 복위되었다. 이 해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죽자 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鳳林大君)을 왕세자로 책봉할 것을 주장하고 스스로 세자의 스승이 되었다. 소현세자빈 강씨(姜氏)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다가 사직한 뒤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북저집(北渚集)」이 전하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역에는 김류 묘, 아들 김경징 묘, 증손자 김노득 묘 등 조선시대 묘와 문인석, 망주석 등 석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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